신석주(서양화가, 시인)

얼마 전, 수,목요일 밤마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30회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시청률이 한 조사기관에 의하면 무려 50.8%를 기록했다하니 나만이 아니고 우리 국민의 반이 울고 웃으며 이 드라마를 보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동안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감동의 드라마가 몇 편 있었긴 하지만 최근 들어 이렇게 높은 시청기록과 방영 내내 정말 많은 화제를 낳은 현대극 드라마는 이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김탁구의 인기 때문에 제빵 업계와 제빵 학원 등 관계 업종 사람들이 호황을 누렸으며 젊은이들 가운데 제빵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열풍까지 불었고, 가정곳곳에서는 ‘홈베이킹(Cooking Sense)’까지 유행을 했으니 메스미디어의 힘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 드라마가 인기 절정에 도달했던 힘은 우리들의 숨겨진 양심을 끄집어내어 밝은 곳에서 꽃을 피우게 했다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묵묵한 내리사랑, 제자에 대한 스승의 하해와 같은 사랑, 자식 앞에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어머니의 희생, 성공을 위한 피 마르는 투쟁의 경쟁들이 철학이 담긴 명대사와 배우들의 명연기로 극의 진정성을 더하며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잘 어우러지면서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의 진수는 더욱 빛이 났던 것 같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어린주인공 ‘김탁구’에게서 나이 오십이 넘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배우고 있었고, 그동안 살아오면서 본의 아니게 적(敵)을 만들어 온 내 삶을 참으로 많이 반성하고 있었다.
물론 비판 섞인 시각으로 보자면 이 드라마 역시 주인공의 기이한 출생-집단에서의 추방-시련과 고난-조력자와의 만남-능력의 발휘-시련의 극복-성공의 권선징악(勸善懲惡)을 담고 있는 고전소설의 영웅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진부한 이야기 구조이지만, 분명 이드라마는 다른 훌륭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보다 주인공 김탁구의 믿어지지 않는 이해력과 관용의 포용력이다. 단순히 심성이 착하고 순수한 열정의 암묵적 진리의 소유자가 아니라 우리가 현대를 살면서 누구나 겪어 볼 수 있는 사건들을 탁구라는 주인공은 그의 이름 해석처럼 ‘탁구를 잘 쳐서 탁구가 아니라 높을 탁(卓), 구할 구(救)자를 써서 이름이 김탁구입니다.’라는 것과 같이 그는 이세상의 진리를 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어린나이에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들을 많이 경험하고, 12년간 어머니를 찾아 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늘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을 딛고 서 있으며 절대 지나간 아픈 과거를 어느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현재의 초라함 앞에서도 그는 늘 당당했다. 그래서 경쟁자들로 하여금 후각을 잃게 되는 등의 갖은 모함을 겪고, 심지어 어머니를 잃게 하고 몇 번을 자기를 죽이려고까지 한 악한 이들에게도 그들을 원수로 삼지 않고 용서하거나 모른 척 눈물을 닦으며 해맑은 웃음으로 관용을 베풀어 모두를 자기의 편으로 만들어 내는 현대의 영웅을 나는 TV속에서 만났던 것이다.

이런 것이 꼭 소설과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가상의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링컨>에게는 평생의 정적(定敵) 한사람이 있었다. <에드윈 스탠턴>이란 사람으로 그는 젊은 시절부터 링컨을 ‘시골뜨기’라 치부하면서 법정에서도, 거리에서도 늘 사람들 앞에서 링컨을 얕잡아 보고 모욕을 주어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동료였다. 심지어 세월이 흘러 링컨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에도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고 비난하며 다녔던 인물이다. 그러나 링컨은 내각을 구성하면서 가장 중요한 국방부장관 자리에 그를 임명하자 참모들 모두가 반대하며 재고를 건의하자 링컨은 “나를 수백 번 무시한 것들이 무슨 문제입니까? 그는 사명감이 누구보다 투철한 사람으로 이 국방부장관 자리가 딱 적격입니다”라고 하면서 원수를 사랑으로 녹여 친구로 만들자고 세상 앞에서 떳떳이 내보였던 것이다.
‘원수를 만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친구도 만들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원수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어질다는 소리도 되지만 그만큼 대인관계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적을 만들어 보지 않고 살아가기는 힘들다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잘했건, 누가 못했건 간에, 또 어떤 오해가 있었던 간에 작게는 친구, 동료 사이에 크게는 한 형제까지도 원수로 치 닿는 현상을 우리는 겪고 보는 것이 우리 인간사의 현실이다.
지나간 나쁜 감정의 대상을 지금 이 자리에 불러내 그때의 내 사정을 털어 놓고 서로 화해의 악수를 하고 싶지만 그때의 내 표독하고 냉정한 마음은 지금 찾을 수없는 그 사람 마음속에만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괴로운 심사(心事)이다. 그러나 이「제빵왕 김탁구」는 숭고한 관용과 사랑 그리고 자기희생후의 욕심 없는 해맑은 열정의 힘을 실어 이 21세기 경쟁사회에서 싸우지 않고 함께하는 자가 이길 수 있다는 아름다운 진리의 꽃을 피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들판에 피는 꽃과 같아서 지고나면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늘, 그래도 내 인생 끝자락에 너를 만나 참으로 즐겁구나. 탁구야!”라고 한 스승 팔봉선생의 말처럼 이 드라마에서처럼 우리도 진정한 한 사람을 만들어 보는 것도 이 가을 문턱에서 해야 될 일 것이다.